할머니는 일학년

시골에 사는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에게 맡겨진 어린아이.
어린아이의 성별이 바뀌었을 뿐 영화 ‘집으로’가 생각나는 구성이다.
그렇고 그런 아류작으로 생각하고 한동안 보지 않았었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혹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특히 ‘집으로’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꼭 보기 바란다.
어찌보면 ‘집으로’와 비슷한면도 없지 않다. 다만, ‘집으로’는 못된 꼬마가 할머니와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얘기하고 있다면 ‘할머니는 일학년’은 남편과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할머니가 아이를 통해 마음의 치료를 받아가는 과정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광고를 이제서야 봤는데, 광고에서도 ‘집으로’를 언급하고 있네?)


할머니에게 병원에서 전화한 통이 걸려온다. 아들이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아들의 친구는 아들의 유품과 함께 아들이 입양해서 키우던 아이 ‘동이’를 데려온다.
할머니는 자기자식이 아니라면서 내치려다 가지 않겠다고 생떼 쓰는 아이가 가여워 집으로 데려오지만, 핏줄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한국의 여느 할머니들 처럼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자기를 찾아 밭으로 온 아이를 모르는 척 하고 이불에 오줌싸는 아이를 구박한다.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더이상 사람을 마음에 담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니 맘같으면 불쌍한 아이 받아주면 좋겠지만, 박복한 애미가 죄인인기라 내 목숨같은 사람들은 죄다 제 목숨대로 못 살기 때문이다."

아들이 남겨놓은 일기를 읽기위해 글을 배우는 할머니, 일기를 읽어가며 ‘동이’의 입양과정을 알게되고 비오는 날 우산을 챙겨 먼 길을 마중나오는 아이의 할머니가 되어간다.

어찌보면 뻔한 줄거리인데, 뻔하지 않은 영화다. 선입견을 버리고 꼭 한번은 봐야할 영화다.

영화를 보고나면 옛날옛적 할머니가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무서운 범골재를 두려움없이 넘어다니는 법을 배우게 된다.


(덧붙임)

1.
"니 보호자가 뭔지 아나?"
할머니 집으로 오게된 ‘동이’에게 묻는다.
"보호해주는 사람이요. 안아프게 지켜주고 아프면 돌봐주고 그런거요."
동이는 답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할머니가 실려간 병원의 간호사가 ‘보호자’분을 찾을 때 동이가 손을 들어 ‘제가 보호자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2.
할머니는 옆집 외국인며느리에게 "어른밥 먼저, 니 밥은 나중에 퍼야한다."고 가르친다.
그에 대해 "내 밥이 먼저 어른껀 나중에"라고 답하면서 이유를 얘기한다.
"안에 것이 더 맛있어요."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에서는 이해가 안되는 행동이었지만 그 나름대로 시어머니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3.
받아쓰기에서 할머니는 다른 글자는 다 틀리고 ‘우리가족’하나만 맞혔다.
어느날 저녁 할머니는 ‘우리가족’을 쓰려다가 연필이 부러져 ‘우리가즉’까지 밖에 쓰지 못하자 동이가 ‘우리가족‘을 완성한다.